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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생 지도의 실패
조회 163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5-03 13:52:08
       
 

4.25 학생 지도의 실패


  우리 반에서 첫 싸움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싸움 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늘 하던 원칙을 잠시 잊었던 탓이다. 문제의 발생을 제대로 진단하고, 명확한 잘잘못을 가려 낸 후, 교육의 기회로 활용할 수 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이번 일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당사자들에게도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 사례가 되고 말았다. 가슴이 아프다.


 나의 갈등 해결방식은 본래 가능한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1.공개 원칙: 비밀에 붙여야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갈등의 원인과 발생과정 등을 소상히 공개한다.

2.당사자 원칙: 본인의 해명과 의견을 충분히 진술할 기회를 준다.

3.토론의 원칙: 문제를 객관화하기 위해 학급 구성원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여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는 이것을 문서로 정리해 둔 바는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일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별 생각 없이-즉 문제 해결을 어떤 과정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싸움은 ‘진도 아리랑’ 가창시험을 본 첫 시간 후에 일어났다. 국어가 둘째 시간이었으므로 교실에 들어서면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웅성대며 지훈이를 둘러싸고 있었고, 지훈이의 목 주변에 손톱자국이 있었다. 누군가가 재빨리 지훈이 목에 일일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지훈이와 혁진이 사이에 뭔가 시비가 있었고, 혁진이가 지훈이에게 손을 댄 것이다.

 수업 후에 지훈이만 나에게 왔고, 싸움은 가창시험의 순서 때문에 일어났음을 알았다. (시험순서는 가나다순인 출석부 순서대로 보는데, 혁진이는 고씨라 항상 먼저 시험을 보고, 지훈이는 홍씨라 맨 뒤에 본다. 그래서 한 번씩 번갈아가며 순서를 바꾸기로 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지훈이가 맨 먼저 시험을 보고, 혁진이가 맨 나중에 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그동안 종례 시간 마다 연습을 한 덕에, 모두 노래를 잘 불러 대부분 A나 B를 받았는데 혁진이는 C 밖에 받지 못해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혁진이는 지훈이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먼저 시험을 보라고 말했고, 지훈이가 싫다고 거절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손찌검으로 번진 것이다. 문제는 혁진이가 등치가 좋고, 주먹이 세고 욕심이 있는 편이라는 점이다. 혁진이가 충분히 아이들을 위협할 만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혁진이는 나의 호출을 고의로 피하고, 방과 후에는 매우 불손한 언행으로 대화를 피했다. 혁진이는 ‘할 말이 없다.’는 얘기만 했다. 있었던 사실 자체를 말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혁진이 주장은 ‘할 말이 없다’는 표현은,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선생님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며 지훈이의 말투가 자신에게 매우 불쾌하게 들렸기 때문에 손을 댄 것이라는 식이다. 혁진이는 한 시간 이상을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는 일을 힘들어했다. 그러나 나는 이틀에 걸친 설득 끝에 결국은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나는 혁진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사과를 한 혁진이는 그제야 홀가분해 했다. 혁진이는 자신은 힘이 세고 주먹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더 나쁘게 보이는 것이 불리하다며, 싸움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과 이런 힘겨운 실랑이를 벌였다고 고백했다. 1학년 때 선생님은 새내기라 결국 선생님이 울음을 우는 것으로 끝이 났고, 2학년 때 선생님은 매를 때리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3학년 담임인 나는 스스로 사과하고 잘못을 시인하도록 해냈다.

 

 혁진이를 보내고 나는 혼자 어두운 교무실에 앉아 생각했다. 흔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뭔가가 부족하다. 아무 문제도 해결된 것이 사실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과할 줄 모르는 혁진이의 입술을 열게 한 것은 성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제야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혁진이와 지훈이가 진심으로 서로 화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 일로 아이들은 불쾌감과 정서적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혁진이와 나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평등하고 우호적인 관계가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나는 싸움을 목격한 후 곧바로, 또는 그 날 종례시간에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토론에 붙였어야 했다. 변명도 들어보고, 아이들의 견해도 들어보고, 반성과 사과를 공개적으로 받았어야 했다. 그 방식을 놓침으로써, 지훈이나 학급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혁진이와 나의 실랑이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 앞에서의 사과도 간신히 해 낸 혁진이에게 친구들에게 공개 사과를 다시 시키는 일은 너무 잔인한 일인 듯싶어서 스스로 포기했다. 결국 혁진이도 지훈이나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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